신앙 고백 이란 | [3분 설교] 신앙고백이란 무엇인가? I 디모데전서 I 한규삼 목사 I 충현교회 187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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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을 진정으로 올려드리는 4가지 진짜 의미!
충현교회 한규삼 목사의 2부 설교(11. 3) 중, 3분영상 입니다
본문: 디모데전서 1장 17절
제목: 벅찬 가슴의 고백

[전체 설교영상 시청하기]
👉🏻 https://youtu.be/1ndsJlEjiCk
[충현교회 홈페이지]👉🏻 http://www.choonghyunchurch.or.kr/
[설교 요약]👉🏻 교역자팀
[디자인]👉🏻 백민아 디자이너

[편집]👉🏻 슈퍼커넥팅
[기도 부탁드립니다]👉🏻 본 채널이 성경적이고, 정확한 복음이 전파되는 통로로만 사용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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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란 무엇인가. 행17:10-12 – 썹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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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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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란 무엇인가. 행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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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고백이란 무엇인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서론-

(행 17:10-12)

2015.6.20

성도의 가장 큰 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성경을 많이 읽으신 분들 중에서도, 성경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은 있지만, 예를 들어 성경목록을 다 외운다거나, 사람 이름을 꿰차고 있다거나, 몇 가지 사건과 스토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성경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한 분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그나마도 모르고, 성경하고는 아예 담을 쌓고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튼 성경을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해서 말씀을 오해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 평생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던 분이, 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이단에 빠지는 불상사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성경과 신앙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다. 체계적인 이해는 큰 힘을 발휘 한다. 이단들이 주로 사용하는 성경해석을 보면 순전히 엉터리인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는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니까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넘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체계도 큰 힘을 발휘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이해한다면 얼마나 큰 능력이 나타나겠는가? 우리가 신앙고백을 배우려고 하는 이유도, 성경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믿기 위해서이다.

신앙고백은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래서 신앙고백을 공부하면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진리에 대한 중심이 잡히기 때문에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신앙 고백을 공부한다고 해서 성경에 대한 모든 지식을 다 배울 수는 없다. 성경 본문을 좀 더 깊고 풍성하게 이해하기 원한다면 성경해석을 따로 배워야 한다. 하지만 신앙고백은 우리가 어떤 원칙과 체계 위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 바르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한마디로 신앙고백은 신앙생활의 공식이다. 예를 들어 구구단을 생각해보라. 구구단은 곱셈 공식이다. 구구단을 외운다고 해서 수학의 모든 것을 통달 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곱셈의 기초를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곱셈의 기초를 이해하면 수학의 다른 부분을 이해하고 응용하는데 매우 유익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위를 돌아보면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고 일단 ‘덮어 놓고’ 믿는(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여기서 덮어 놓고 믿는다는 말은 아무런 의심이나 분별없이 곧이곧대로 믿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뭘 그렇게 골치 아프게 꼬치꼬치 따지고 드느냐, 그냥 아멘으로 받으면 되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이 더 순수하고 고귀한 믿음이라고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 이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는 믿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마11:25, 18:2-4)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덮어 놓고 믿어도 구원 받는 데는 지장이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음이 자라고, 좀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발돋움 하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 왜냐하면 이런 믿음은 비록 순수하고 착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 하더라도, 분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혹은 분별력을 발휘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영혼과 믿음에 치명적인 해를 당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덮어놓고 믿지 말고 ‘분별하라’고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1:10)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5)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일4:1)

덮어 놓고 믿는 사람들이 왜 분별력이 떨어지게 되는가? 간단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성경을 덮어 놓던가, 교리(신학)를 덮어 놓든가, 생각을 덮어 놓든가, 아니면 셋 다 덮어 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좋아’보이거나, ‘선해’보이거나, ‘거룩한 것처럼’ 느껴지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무분별하게 다 받아들이고 만다. 혹은 반대로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고 만다.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몇 가지 ‘키워드’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휘청대는 것이다. 혹시 아이돌 그룹(블락비)의 노래 중에 ‘HER’이라는 노래를 아는가? 거기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다. “jesus 무슨 말이 필요해, 모두 널 작품이라고 불러” 여기에서 ‘jesus’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을 보고 “좋은 노래 아니냐?”, “작사한 사람이 크리스천인가 보다”라고 말하는 학생을 본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실화다. 조금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심각성의 정도만 다를 뿐이지, 의외로 이런 어이없는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정말 심각한 문제다. 사단은 우리를 속이고, 미혹에 빠뜨리려고 갖은 수단을 다 쓰는데, 심지어는 천사인척, 쉽게 말해 하나님의 뜻이고, 진리인척 가장하는데(고후11:14-15), 정작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도구인 말씀과 교리와 생각을 덮어 놓고 있으니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여러분들은 이 셋 중에 무엇을 덮어놓고 있는가? 아니면, 무엇을 펼쳐놓고 있는가? 우리가 이 땅에서 바르게 신앙생활 하고, 온전하게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절대 덮어놓고 믿어서는 안된다. 성경을 펼쳐야 한다. 교리와 관련된 책도 펼쳐야 된다. 그리고 성경과 교리에서 비롯된 진리들을 진지하게 살펴보고 적용할 수 있도록 생각도 펼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에 기록된 베뢰아 사람들은 우리에게 좋은 모범이 된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예배당)에서 말씀을 전했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 누구보다도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회당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구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지식과 관심이 있는 이방인들도 있었기 때문에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도 유대인 회당을 이용했다(10절). 그런데 바울이 베뢰아에서 말씀을 전할 때 베뢰아 사람들, 그러니까 이방인들이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말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날마다 말씀을 읽고 배우려고 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1절)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그렇게 말씀을 받고 날마다 공부한 사람 중에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아니하나 (12절)

베뢰아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다가 믿게 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성경을 보면 당연히 예수님을 믿게 되는거 아닌가?’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신구약 성경을 다 가지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하는 생각일 뿐이다. 베뢰아 사람들이 읽었던 말씀은 구약이었다. 구약성경에 ‘예수’라는 이름이 몇 번이나 나올거 같은가? ‘십자가’라든지, ‘부활’, ‘그리스도’ 같은 말은 몇 번 나올 것 같나? 단 한 번도 안 나온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공부하다가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성경을 부지런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성경을 부지런히 공부하면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39)

이렇게 우리는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고, 말씀의 내용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날마다 말씀을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을 더욱 온전히 믿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말씀을 공부해야만 ‘덮어 놓고 믿는’데서 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는 덮어 놓고 믿기는커녕 궁금증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혹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누가 덮어 놓고 믿는가? 우리도 다 따져보고, 생각해보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 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혹시 우리가 매 예배를 시작할 때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이 있는가? 왜 신앙고백으로 예배를 시작하는 것인지, 신앙고백은 ‘사도신경’뿐인지 등등. 물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런 부분에 대해서 몰라도 크게 상관없다. 하지만 무엇이든 간에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매 예배 시간 마다 빼놓지 않고 ‘사도신경’으로(사도 신경을 사용해서) 신앙을 고백하게 될 텐데, 이왕이면 사도신경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아는게 좋지 않겠는가? 이렇게 여러분들이 하나라도 더 ‘알고’ 행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앞으로 약 1년 동안 신앙고백에 대해 함께 배워보고자 한다. 그전에 내가 이번 시리즈 설교에서 주로 사용(인용)하게 될 책을 소개 하도록 하겠다. 「개혁주의 신앙고백」(김학모 목사, 부흥과 개혁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1-3」(R.C.스프로울, 부흥과 개혁사). 여러분들이 이 시리즈 설교를 빠짐없이 듣는다면, 총 4권의 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질문을 던졌으니 일단 답을 먼저 해주겠다. 사도신경은 신앙고백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3세기), 사도들로부터 유래되고 전수된 신앙고백이다. 참고로 [사도신경]이라는 명칭은 주후 4세기 말부터 사용되었다. 사도신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창조주 되시는 성부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성자 예수님의 성육신과 고난, 부활, 승천, 재림 그리고 성령과 교회, 성도의 부활과 영생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분량은 적지만, 성삼위 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비롯해서 구원과 관련된 중대하고 핵심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이해하기 쉽게 요약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초대 교회의 전통과 신앙을 존중하여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채택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배 때 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이유다.

이제 본격적으로 신앙고백에 대해서 배워보도록 하겠다. 먼저 신앙고백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자신의 신앙(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신앙고백이다. 하지만 자신의 믿음을 구체적으로 고백한다고 해서 다 신앙고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생각해보자. 사실 이 세상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어떻게 믿느냐이다. 우리처럼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님도 구원에 이르는 길 중에 하나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4대 성인 중 하나로 믿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희대의 사기꾼-종교지도자라고 믿는다. 어쩌면 ‘그런 사람은 아예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배우려고하는 신앙고백은 이런 다양한(혹은 모든 종류의) 믿음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한 진리, 성경에서 요구하는 신앙(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신앙고백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보셨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16:13)

바꿔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느냐?’, ‘어떤 사람이라고 믿고 있느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했다.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16:14).

그때도 지금처럼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믿음이 있었지만, 당시의 주된 여론(믿음)은 ‘예수님은 선지자’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제법 괜찮은 대답(믿음)아닌가? 지금도 예수님을(혹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난 사람들이 많지만,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예수님을 선지자-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으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해서 제법 긍정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 제대로 믿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대답을 듣고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들었는지 다시 한 번 물어보신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16:15)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는 세상 사람들의 믿음은 예수님이 원하던 신앙고백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의 믿음이 옳았다면, 예수님은 분명 칭찬하시며 “너희도 이런 믿음을 가져라”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은 나를 선지자로 여기는데, 그러면 너희는 나를 어떻게 믿고 있느냐?”고 물어보신다. 제자들에게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대답, 다른 믿음, 다른 신앙고백을 기대하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 이때 베드로가 다른 모든 제자들을 대표해서 신앙을 고백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6)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구원자)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크게 칭찬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16:17).

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이 말씀은 교회가 베드로의 신앙고백, 그러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 그 믿음 위에 세워진다는 뜻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배우는 내용이 바로 예수님의 구원과 예수님의 신성(하나님이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신약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신앙고백은 단순명료하면서도 기독교의 근본적인 진리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배우게 될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고백보다 양적으로 방대하고, 질적으로 깊고 풍성하다. 사도신경만 봐도 그렇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비하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해서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로 끝나는 사도신경은 단순히 문장 수로만 비교해 봐도 10배가 넘는다.

처음에는 단순명료했던 신앙 고백이 이토록 방대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의 역사 속에서 이단들의 공격으로부터 진리를 수호하고 잘못된 성경해석으로부터 바른 해석을 고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분량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엉뚱한 소리하는 사람을 설득하려고 하다보면 말이 길어지는 법이다. 특별히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의 극심한 종교적인 타락으로부터 진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오직 말씀’이라는 기치아래 기독교의 신앙고백을 재정립했다. 우리는 이것을 개혁교회(주의) 신앙고백이라고 부른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은 가장 먼저 성경에 대한 분명한 정의와 신념을 세우고(성경관), 이를 기초로 해서 진리 체계, 구원, 구원 받은 자의 삶에 대해 교리를 세워 나간다.

앞으로 우리가 중점적으로 배우게 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큰 줄기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개혁주의 신앙에 대해) 내용 구성에 있어서 지성적이고 논리정연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신앙의 논리적 체계를 갖추는데 더 없이 유익하다. 잠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당시 영국은 정치와 교회 문제가 하나로 뒤얽혀 있었다. 엘리자베스 1세(1588-1603)부터 제임스 6세가 영국의 왕위에 앉아 있는 동안 그들은 개혁주의 신앙고백을 내세우는 청교도들을 탄압하거나 괄시했다. 이러한 중에 스코틀랜드에서 내란이 일어났고, 영국은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이때 개혁주의 장로교도들은 영국 교회에 장로교 정치를 도입하고 신학적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고, 이를 위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121명의 성직자들이 모여 총회를 열고 약 4년 동안(1643년 7월 1일-1647년) 신앙고백을 작성했다. 이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다. 그러나 이 신앙고백은 정작 영국에서는 복잡한 정치 변화로 인해 빛을 보지 못했고, 오히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1647년에 교회 공식 신앙고백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이후에 미국 장로교회에서 1729년에 공식적인 신앙고백으로 채택했다. 이렇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스코틀랜드와 이후 미국 장로교회에서 최고의 신앙고백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선교사들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가장 큰 장점(특징)은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성경을 근거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성경을 외쳤던 개혁주의자들의 확신을 따라 성경의 권위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비롯한 개혁주의 신앙 고백을 공부하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게 되고, 이를 기초로 자기 신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작성된 신앙고백을 배우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지켜나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노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고백을 부지런히 배우면 진리 위에 굳게 설 수 있고, 더욱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신앙고백이 중요한 이유이고, 우리가 시간을 투자해서 신앙고백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크게 문제 될 것 없다. 오늘은 우리가 앞으로 배우게 될 내용에 대한 예고편이기 때문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신앙고백을 배우는 것은 곧 자라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는 것이다. 일단 신앙고백(교리)을 배우다 보면, 교리에 대한 편견(재미없고 딱딱하고 어려울 것이다)는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다. 오히려 너무나 흥미 있고, 재밌고, 기쁨과 감격이 넘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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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7년판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표지

신앙고백은 기독교의 바른 교리, 즉 기독교인이 지켜야 할 교리이다. 신경이나 신조(creed)라고도 하는데,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거나 기독교의 교리를 정리하는 데 목적이 있다.교회역사에서 고백된 신앙고백은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에페소 신조, 칼케돈 신조,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등이 있다. 그외 영국 성공회의 영국 성공회 39개조 신조처럼 특정교회에서 교회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서 정리한 신앙고백과 스코틀랜드 신앙고백(The Scot Confession),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네덜란드의 도르트 신조 (네덜란드어: Dordtse Leerregels), 1632년 메노 시몬즈의 영향을 받은 재침례파의 《도르트 신앙고백》」(TheDordrecht Confession), 사보이 신앙고백, 1689 침례신앙고백과 같은 청교도와 개신교인들의 신앙고백도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 편집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개신교회의 신조들 중에서 교회론에 대한 가장 완벽한 체계를 확립한 기준 문서로 평가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원래 영국과 스코틀랜드 청교도들의 교리적 통일과 유럽 대륙 내의 개혁파 교회들과의 연결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존 낙스의 신앙고백과 제네바 신앙고백의 영향을 받았으며 칼빈주의를 따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도게요서(信徒揭要書)로 부르며, 대부분의 장로교회들이 이 신앙고백을 따르고 있다.

한국 개신교회의 신조 [ 편집 ]

1907년 장로교회는 독노회를 조직하고 장로교회의 신앙적 기준으로 《12신조》를 공표했다. 《12신조》는 인도 장로교회의 12신조를 서언만 바꾸고 나머지는 그대로 채용한 것이다.[1] 인도 장로교회의 12신조는 1890년에 작성된 영국 장로교회의 24개 신조를 요약한 것이다. 독노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교회에서 가르치도록 언급했지만 총회적 차원에서 공적으로 채택하지는 않았다. 한국장로교회는 12신조의 미흡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1960-70년대 들어와서 교회론의 체계를 가장 완벽하게 정립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각 교단마다 총회적으로 채택하였다.

1963년에 예장합동측이 총회를 통해「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헌법에 공식적으로 채택하였고, 1968년 예장통합측이,1972년 예장 고신측, 1974년에 예장 대신이 채택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미국연합장로교회(UPCUSA)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폐기하고 카를 바르트의 입장을 따라 화해신학적 교회론을 구성하는 《1967년 신앙고백서》를 발간하면서 개혁교회 신조들의 교회론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신학자 박형룡 박사는 《1967년 신앙고백서》가 사회복음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입장임을 제시했고,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전통과 전혀 다른 고백임을 밝혀냈다.[2]

각주 [ 편집 ]

[고백] 신앙고백이란 무엇인가요?

minkyo

신앙고백이란 무엇인가요?

기독교 신앙에서 믿음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히11:6)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1] 기독교 신앙에 있어 믿음은 ‘믿음의 대상’에서 출발합니다. 즉,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 아는 것에서부터 ‘참된 믿음’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의 대상이 빠진 채 자기 확신과 자기 암시를 강화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예컨대,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의존 대신에 자기 소원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품고 ‘믿는 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작은손 선교운동연합회 Paul’s World Mission Movement Association (PWMMA)

교회의 신앙고백이란?

교회의 공동 신앙고백이란 교회와 성도들이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있으며, 어떤 신앙을 갖여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 또 고백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신조를 교회사적으로 고찰하여 보면 대표적적인 공동신조(공동고백)를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수있는데,

신앙고백서란 : 네이버 블로그

신앙고백서란

신앙고백이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인간, 그리스도, 교회, 종말 등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개인이나 교회 공도체가 그 믿는 바를 일정한 형식으로 선언하는 신앙의 문서를 의미한다.

신앙고백은 대적으로는 예배와 기도, 세례문답, 성찬식의 집례와 신앙교육을 위해 필요하고, 외적으로는 이단과 이설을 막고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 교회에서는 이 고백의 사용을 통해 믿음 안의 단일성을 과시하였고, 이 고백과 다른 집단과는 구별된 교회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프랑스 신앙고백서 1559

1515년 프랑수아 1세는 독일의 카를 5세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이슬람 세력인 오토만 제국과 외교적 제휴를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유럽의 비난을 받게 되었고, 이에 프랑수아는 로마 가톨릭에 충성심을 과시하기 위해 프랑스 개신교인 위그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독일이 루터파로 분열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정치적으로도 위그노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앙리 2세도 위그노를 핍박했다. 그 속에서 1555년 파리에는 최초로 개신교 교회가 비밀리에 설립되어 예배가 시작했다. 1560년경에 프랑스 위그노들은 무려 200백만 명을 넘어섰다. 많은 귀족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 개신교의 발전 그 속에는 칼빈과 베자의 숨은 지원과 도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소수파에 대한 극심한 박해는 있었고, 이를 위해 신앙고백서와 신앙고백서의 초안이 작정되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프랑스 신앙고백서는 칼빈이 초안한 것을 그의 제자인 앙트완 드 샹듀가 개편해 1559년 5월 26일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프랑스 개혁파 교회 전국 대회에 제출했다. 신앙고백서는 1571년 제7회 프랑스 개신교 총회에서 칼빈이 초안한 1559년 판인 35개조를 40개조로 개편하여 정식으로 승인 되었다. 총회가 개최된 지역인 ‘라 로셸’의 이름을 따 ‘라 로셸 신앙고백’라고 부르지만 일반적으로 ‘프랑스 신앙고백’ 또는 ‘갈리칸 신앙고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완성된 신앙고백서는 성 바르토로메오의 날인 8월 24일에 대학살로 인해서 막을 내렸다.

프랑스 신앙고백의 역사에서 주목할 것은 치열하고 시급한 위기에 빠진 진리의 신앙인들에게 즉각적이고 분명한 답변과 확신 있는 고백을 선언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개신교도가 가장 먼저 척결하고 변증해야 할 대상은 로마 가톨릭의 ‘교황주의’라는 우상이었다. 따라서 프랑스 신앙고백서 1조는 먼저 ‘신론’을 정당하게 서술하며 신자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교황주의를 논박하고 있다.

또한 개혁주의 교회론의 정립에 큰 발전을 볼 수가 있다. 교회의 표지로서 말씀에 대한 순종과 성례가 첨가되었다. 교회의 분리운동을 배격하며 목사, 장로, 집사 등 교직에 대한 위계질서가 없고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지역 교회는 내부 문제에 대해서 자치적인 통치권을 갖는다. 교회의 대표자를 인정하지 않는 교회의 동등권 강조가 철저히 주장되었다.

벨직 신앙고백서 1561

개혁교회의 교리를 잘 표현한 교리문서를 보통 벨직 신앙고백이라고 한다. 벨직은 벨기에를 뜻하지만 네덜란드 신앙고백서라고 하는 이유는 신앙고백의 작성이 지금의 벨기에로 알려진 남부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서남부는 프랑스어 사용지역으로 칼빈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 1540년대 초부터 네덜란드에는 칼빈주의 신앙이 소개되었고, 1555년 이후 칼빈주의 신앙은 네덜란드에서 넓게 퍼져갔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이로 인해 로마 가톨릭에 극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은 개혁신앙이 반국가적인 활동으로 오해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목사를 받은 구이도 드 브레는 개혁신앙은 국가에 반역하는 것이 아니며 성경을 따라 참된 기독교 교리를 고백하는 사람들임을 입증하기 위해 이 고백서를 작성하였다. 이 고백서는 전 37장으로 구성된 것으로서 프랑스 위그노들의 신앙고백서인 갈리아 신앙고백서를 모델로 작성했다. 두 고백서 모두 칼빈의 영향과 기독교 강요로부터 받은 영향이 뚜렷하지만 차이점은 벨직신앙고백서는 재세례파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면서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벨직 신앙고백서는 두 가지 특별한 내용이 핵심 사항으로 담겨 있다. 하나는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를 게시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교회의 본질을 바르게 정리한 것이다. 이 목적은 재세례파와의 차별성을 부각시켜서 순수한 개혁 신앙을 인정받고자 하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작성자 드 브레는 개신교인들이 너무나 권위를 부정하며, 무정부주의자들처럼 혼란을 야기하는 것에 실망을 느끼고 정권에 대해서 순종할 것을 강조했다. 재세례파들의 영향으로 볼 수가 있다.

총 37장으로 구성된 벨직 신앙고백서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처럼, 그 구성을 전체적으로 볼 때에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성경으로부터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한 설명이며(1-9), 둘째는 창조와 구속에 관한 그리스도의 사역이며(10-23), 성령의 성화와 교회의 사역(24-37)에 관한 것이다.

재세례파와 구별하려는 의도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강조하고(18), 교회가 분파적인 이단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할 것과 공적인 모임임을 역설하고(28-29), 유아 세례를 시행할 것(34), 정부 기관도 하나님이 세우신 것임을 설명한다(36).

이 신앙고백서는 1566년 안트웹에서 조직 된 네덜란드 칼빈주의 최초의 노회에서 1561년에 작성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1618-1619년 도르트회의에서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교리적 규범으로 채택되었다.

하이델베르크 1563

개혁교회의 두 번째 교리 규범은 요리문답이다. 이것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선거후인 프리드리히 3세의 명에 의하여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령이 된 독일 선거구의 수도인 하이델베르크에서 이 요리문답이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이 경건한 통치자는 칼빈의 종교 개혁이 그 주도권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인 자카리우스 우르시누스와 궁정 설교자인 올레비아누스로 하여금 간단한 요리문답의 지침서를 만들도록 부탁했다. 그 결과 요리문답이 나왔는데, 그 후에 왕과 칼빈주의에 정통한 사람들에 의해 승인을 얻어서 1563년 초에 발간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해에 세 판이나 더 찍어낼 정도로 대중에게 급속히 알려졌다. 더욱이 이 책은 하나의 새로운 질문과 대답이 주일이라는 이름 아래 52부분으로 엮어져서, 이 모든 요리문답이 일 년에 걸쳐 전부를 배울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또한 하이델베르크에서는 루터파와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신학 논쟁을 빈번히 벌였다. 이에 프리드리히 3세는 멜랑히톤에 주도하에 공동의 신조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멜랑히톤은 신앙문답서가 성경에 근거한 단순한 것이 되어야 하며, 격론이 일어날 수 있는 성찬론에 대해서는 이견을 배제하고 기본적인 가르침만을 포함하도록 충고하였다.

구조면에서 다른 점이 있다. 주로 성경에 대한 고백에서 시작되지만,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에서는 먼저 인간의 죄와 비참에 대해 취급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죄와 비참함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가에 대한 문답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문답서 제1문과 답에서 위로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는 것은 탄압 하에 있는 프로테스탄트들을 위로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조적인 면에서는 루터적 특징이 나타나 있지만 이 문서에 나타난 성찬관 등은 개혁주의 입장을 부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개혁주의 교회 신앙문답서로 손색이 없다.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의 신학적 특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실생활 중심의 실천적인 요리 문답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향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매우 경건하고 헌신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욕구와 인간적인 관심사를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선택하여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핵심이면서도, 복음이 인간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 주는가, 은혜로운 축복으로 인해서 사람이 받는 유익과 위로와 혜택이 무엇인가를 거듭해서 관심을 가지고 다룬다.

둘째, 이 신앙 고백은 고난과 박해를 받던 당시 성도들에게 주는 최고의 위로가 되었다. 바로 첫 문항에서부터 자기 백성들에 대해 위로하심이 강조되어 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초월적인 선하심이 항상 지배하시고 통치하심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세상에서는 버림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원을 얻게 된다고 확신을 심어 주었다.

셋째, 복음적이요 보편적인 기독교 신앙을 압축한 점이다. 신학적인 설명을 매우 평이하게 도입하여 단순하게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

첫 문항은 이례적으로 매우 긴 문장이다. 16세기는 죽음과 관련된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것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로라는 것은 마치 쉼터와 같은 곳에서 얻는 안식이요 보호였다. 신앙고백서는 당시의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여 그 당시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위로였음을 모든 사람에게 설명한 것이다.

다음 특징으로는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사역을 꼽을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가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으로 시작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보호하심으로 지켜 주시고 성령께서 내게 영생을 알려 주시고 나의 의지를 조성하신다는 것으로 마친다. 이 삼위일체적인 구조는 계속해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구조를 겸하는데, 내가 이미 죄로부터 자유케 되어졌고 지금 보호를 받으며 장차 영생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처음 문답은 복음의 설명과 함께 율법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줌으로써 마치고 있다. 성령은 그분의 뜻을 따라서 살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주신다. 우르시누스는 저술 초기에 약 323개 항목의 문답으로 구성했으나, 최종 손질을 거친 총 문항은 129개로 조정되었다. 129문으로 구성된 이 신앙문답서는 3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1부는 인간의 죄와 비참함에 대하여, 2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의 구원에 대하여, 3부는 구원받은 성도의 감사의 삶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이 내용은 로마서의 구조를 따른 것이다.

도르트 신조 1618-1619

도르트회의라고 말하지만 도르트는 도르트레히트의 축약어이다. 네덜란드 남부도시이다.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40년 전쟁으로 독립권을 확보하고 칼빈주의를 받아 드렸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칼빈주의적인 개혁교회가 국가교회로서 주도적인 교회였으나 다른 교파도 종교적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광용론자들의 영향이 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사람이 바로 야콥 아르미누스이다. 그는 칼빈주의자였지만 예정론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다. 시작은 법률가 디리크 코른헤르트이다. 그가 창세기 3장에 근거하여 예정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것을 반박하기 위해 아르미누스가 코른헤르트의 주장을 보면서 그 주장의 타당한 일면을 보았다. 그러던 중 1603년 아르미니우스는 라이덴 대학 신학부 교수로 취임했고, 그 후 예정론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에 프란시스쿠스 고마루스와 격렬한 논쟁을 전개한다. 고마루스는 신펠라기우스 사상이라고 비판했다.

아르미니우스가 죽고 그의 제자인 에피스코피우스가 교수직을 계승하고, 예정 논쟁은 계속되었다. 이 문제는 정치적 문제와 결부되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논쟁은 심해져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서명을 받아 네덜란드 의회에 항의서를 제출했다. 이 때 나온 것이 아르미니안 5대 교리이다. 그 외에도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국가는 어떤 교리가 바른 것인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총독 마리우스는 아르미니우스 논쟁을 처리하기 위해 국가교회회의를 소집했는데, 그것이 도르트회의이다.

이 회의는 네덜란드 남부도시에서 열렸지만 네덜란드 교회뿐만이 아니라 잉글랜드,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의 모든 개혁교회 대표들을 초정했다. 이 회의는 7개월 동안 154회의 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항의자들의 5개조가 성경과 조화되지 않음을 알고서 회원들은 아르미니안파의 5개조를 만장일치로 거부하였다. 또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의 내용을 검토하여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의 내용이 모든 면에서 성경과 그리고 다른 개혁교회 신앙고백서들과 일치한다고 보고하였다. 또한 거부한 5개 조항에 대항하여 5개조 93개항의 문서를 작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도르트신조이다. 그리고 대항하여 만들어진 5개조가 ‘칼빈주의 5대 교리’이다.

예정론을 근간으로 한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알려진 구원론에 관련된 다섯 가지 핵심 사항을 채택한 것이다. 논쟁을 거쳐서 나온 문서인 만큼 16세기에 나온 신조에 비하면 매우 정교하고 체계적이며, 논증적이다. 종교 개혁 시대에는 새롭게 복음을 발견하는 통찰력이 필요하였던 것이 아니라 보다 정확하고 명쾌하게 규정하여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옹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개신교 정통신학 또는 개신교 스콜라주의라고도 불린다.

웨스트민스터 164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7세기 영국 웨스트민스터에서 작성된 장로교의 신앙고백서로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드러내고 있는 중요한 고백서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찰스 1세로부터 시작한다. 찰스 1세는 청년 시기를 프랑스에서 보냈고, 거기서 본 것과 배운 것이 죄다 절대왕정과 왕권신수설이었다. 영국의 입헌군주제 사상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명분 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명분이 없기 때문에 계속하여 패전이 늘어났고, 전쟁 자금으로 인해 의회와 갈등이 생기자 1629년 의회를 해산시켜버린다. 그리고 이상하게 교회 개혁을 시작하는데 개혁 된 스코틀랜드에 주교 제도를 강요하였고, 공동기도서가 화근이 되어 스코틀랜드는 1638년 국민언약을 선언하고 전쟁을 한다. 이것이 2차에 의해 일어난 주교전쟁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스코틀랜드는 평화협상단을 보내 잉글랜드에게 하나의 신앙고백, 교리문답서, 예배모범서 그리고 동일한 형태의 교회조직을 소유하자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스스로 개혁을 해보겠다고 하고 스코틀랜드의 평화협상단은 돌아간다.

그러나 찰스 1세의 의회 습격사건으로 1642-1651년 동안 의회와 찰스 1세는 전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청교도 혁명이다. 이 속에서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열린다.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순교신학으로는 안 되는 것을 깨닫고, 외면했던 청교도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잉글랜드의 위기의식과 각성 속에서 추진된 새로운 개념의 종교개혁 움직임이자 국책사업인 것이다.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에 손을 내밀었고, ‘엄숙한 동맹과 언약’이 채결된다. 이에 이미 시작되었던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성격은 바뀐다. ‘엄숙한 동맹과 언약’을 통해서 스코틀랜드에서 보내진 장로교회파 특사들과 군부의 지지를 받은 독립파 그리고 잉글랜드 의회의 지지를 받는 에라스투스파 이렇게 절묘한 세력 균형으로 5년 7개월 22일 동안 1163번 회의를 통해서 완성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가장 먼저 다룬 것은 바로 ‘교회 정치’이다. 교회를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가 큰 관심사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오랜 세월동안 서서히 망가져왔던 교회정치를 목숨을 걸고 개혁한 것이다. 총회는 교회를 다스리는 분을 성경에서 찾았다. 핵심은 사람이 사제나 주교 등의 성직자가 아니라 일반 신자 중에서 나온다는 놀라운 결론이다.

다음으로 ‘예배’에 대한 개혁이었다. 로마 가톨릭 예전에 더욱 가까워진 성공회 공동기도서를 왕국 전체에 강요했던 찰스 1세에 맞서, 새로운 예배 모범도 만들어야 했다. 즉, 총회의 핵심 관심사이자 선행과제는 바로 ‘교회정치’와 ‘예배모범’의 작성이었다.

마지막에 교리문답을 만들어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방식은 질문자의 질문을 복창하면서 자기 입으로 직접 대답하는 것이다. 비로소 신자들은 자기가 믿는 것을 자기 입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전 3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에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강조했다. 2장에서는 하나님과 삼위일체, 3장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4장에서는 창조, 5장은 섭리에 대해 기술했다. 6장은 인간의 타락과 형벌, 7장은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을 기술했다. 8장에서는 중보자 그리스도 9장은 자유의지의 문제를 취급했고, 10장-18장은 은혜와 구원에 대한 확신에 관해서 기술했다. 19장은 율법을 행위계약의 관점에서 기술했으며 20장은 기독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21장은 예배와 안식일, 22장은 맹세와 서약, 23장은 위정자에 대해, 24장은 혼인과 이혼 25장-31장은 교회론, 그리고 32장 33장은 죽음과 부활과 심판에 대해 기술했다.

기독교 신앙의 전체가 논리적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그 특징을 다음의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성경과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 고백서는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이 신앙고백서는 계약신학의 전개를 보여준다. 넷째, 신자의 생활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한국교회가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통합이나 고신은 자신만의 신앙고백서를 만들었지만 합동은 아직까지 신앙고백서를 수정하지 않았다.

참고도서

프랑스 신앙고백 해설(장대선, 세움북스)

한눈에 보는 대조 설명한 개혁주의 신앙고백(김의환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특강 종교개혁사(황희상, 흑곰북스)

개혁신학의 전통과 유산 개혁신학 광맥(김재성, 킹덤북스)

기독교로 보는 세계역사(김동주, 킹덤북스)

개혁주의란 무엇인가(이상규, 고신대학교 출판부)

키워드에 대한 정보 신앙 고백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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